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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친구도 구원자도 아닌 소년의 이야기

5월 4일부터 보호글을 하고 있는 이 글이 너무 불쌍해서 그냥 갈무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보호를 푼다ㅠㅠ 여기 저기 뿌려놨던 내 말을 다시 한 페이지에 모으는 꼴 밖에 되지 않는 글이지만,, 너무 두서없어서 진짜 창피하다.

주말에 다시 민식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보고 오고 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분명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이 글이라도 보호를 풀어야 다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5월 3일 처음 본 눈발과 민식이는 이랬습니다. 스포는 당연히 곳곳에 어마무시하게 깔려 있습니다.



1. 강하지 않다는 것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듣고 봤기 때문에 민식의 시선으로 영화를 쫓을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영화는 민식의 시선에서 고성과 예주와 일련의 사건을 그린다.


내가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민식이가 처음으로 소에 여물을 줄 때. 아버지와 차를 타고 고성내려오는 길에도 어른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던 민식이가 처음 얼굴에 온도를 띄운 장면. 원래 민식이 가진 성정이 따뜻한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민식이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자신보다 약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느끼는 아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장면 이후로 내가 본 모든 민식의 모습은 약자에게 약한 사람.


민식이가 강한 사람인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순 없다. 90분의 러닝타임동안 끊임없이 타인에 의해 흔들리기도 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하지 못한 사람이 아무도 지킬 수 없는가? 민식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강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없는가. 강하지 않은 자가 던진 돌맹이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파동을 그리는지 민식이는 알 수 없었을 것... 민식이 모든걸 지켜냈다면 이 영화는 히어로물이 되었을 것ㅎㅎ.. 민식은 본래 가진 따뜻한 성정으로 감당할 수 없는 돌맹이를 던졌고 밀려오는 파동에 잠식되어버린 것은 예주 뿐만이 아니었다. 민식 그 자신이기도 했다. 강하지 않은 자가 지킬 수 없는 것다는 것이 현실임을 알고, 지킬 수 없는게 비단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뿐만이 아님을 알기에는, 민식은 '그냥'이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어리고 약한 사람.



2. 방관자


어디선가 민식을 방관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나와는 조금 생각이 다른 리뷰였는데, 내가 민식일 방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민식이 예주의 세상에 개입되는 부분부터 민식 스스로의 선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예주의 삶에 깊게, 그것도 자발적으로 개입하는 캐릭터가 방관자라는 단편적인 단어로 설명될 수 있나? 


나는 정말 민식을 방관자라고 하고 싶지 않다. 민식이는 진영이 말대로 그냥 '보통 아이'인 것이다.

사실은 처음 보는 소를 신기해하고 아파서 쓰러지는 할아버지를 모르는체 할 베짱도 없는 보통 아이. 잘 나가는 친구들 말에 뭐든 할 것 처럼 보이는 용기없는 아이면서도 동시에 예주의 손에 고의적으로 떨어진 카레가 뜨거울 것이라 걱정하는 아이. 그래서 보통의 삶을 뒤흔드는 '그 사건'은 민식이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겁하게 돌아섰지만 비겁했으니까 '보통 아이'를 이야기 할 수 있다. 민식은 덤비는 용기와 돌아서는 비겁함을 모두 가진 그냥 보통 아이니까.


방관자라는 단어로 민식을 설명하기에 민식이 직접 선택하며 맞선 것들이 너무나 크다.



3. 불쌍한 조민식


영화를 두 번째 보고 나오는 날 나는 민식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팬들 사이에서 장난처럼 조민식 나쁜놈이라고 불리는 것에 예민하게 굴었던 것도 민식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주를 위해 몇 번이나 덤볐던 그 용기를 다 무시하고 마지막 외면 하나로만 민식일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게 장난임을 알아도. 민식은 곧 진영이고 진영이가 민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그 시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 장난이 하나도 재미있지 않고 진짜 불쾌했다.


민식은 예주를 위해 몇 번이나 용기를 낸다. 그러나 그 모든 용기를 무력하게 만드는 큰 사건이 '보통의 삶'을 뒤흔들어버리기 때문에 민식은 결국 용기를 갖는 것 대신, 죄책감을 갖는 길을 택한다. 민식이 교회에서 쫓겨나는 예주를 무력하게 쳐다보며 눈을 붉히고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제일 눈물이 나왔다. 


진영이에게 준 편지에 민식이는 예주에게 결국 친구도 구원자도 되지 못했지만 방관자도 아니었기에 나쁜놈이 아니라고 말했다. 두번째 관람까지 마치고 편지를 썼다면 나는 민식이를 불쌍한 애라고 말했을 것 같다.



4. 민식과 예주


익숙한 곳에서 버림받은 예주와 이미 버림 받아 타지에 온 민식이 서로 연민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한다. 제대로 된 가정도 학교도 친구도 없는, 어느 곳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 속에 어딘가 살고 있을 거 같은 불쌍한 삶들.


민식과 예주가 처음 서로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건 아마도 예주의 집에서 밥 먹는 장면. 민식은 미안하다며 눈을 붉히고 예주는 걸레를 쥐고 사과하는 민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의지할 곳 없고 소속된 곳 없던 둘에게 처음으로 뭔가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기분을 느꼈겠지. 다만 아쉬웠던 것은 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점점 증폭되어가는 지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 했다는 것. 러브 스토리가 아니니까 어느 정도는 이해해도, 조금 아쉽다고 느낄 정도로 뭉뚱그려져 설명된 부분들이 있었다. 


예주는 마침내 모두에게 버림받는다. 자신을 보고 도망가는 민식에게서,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하나님에게서, 웅덩이를 밟음으로써 자기자신에게서, 마지막으론 염소에게서까지. 예주의 삶에 들어왔던 모두가 예주를 등진다. 조민식을 불쌍하다고 생각한 건 어느정도 나의 민식에 대한 애정과 이해에서 나온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예주가 불쌍하다는건 이 영화를 본 모두가 동의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끝없이 추락만 하는 예주.


예주가 더 불쌍했던 건 특정 장면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장면에서 공감을 하고 어머 어떡해 너무 안됐다, 가 아니라 아 저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싶어서.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배우에게도 괜시리 미안해졌다. 눈발에서 유일하게 문제가 된다면 될 수 있는 '그 장면'을 넣은 감독의 의도는 이해를 할 수 있다. 한없이 지옥으로만 치닫는 예주의 거지같은 삶의 절정을 보여주려고 한 거겠지만,, 그 표현방법이 조금 수정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빛만으로도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감독의 연출능력 아닌가. 꼭 개봉시에는 편집이 다시 됐으면 좋겠다. 



5. 사실 하고 싶었던 제목은 구원자도 친구도 되지 못한 소년의 이야기


영제가 길잃은 염소라 했다. 이 말은 결국 민식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구원자도 친구도 되지 못하고 그 사이 길을 잃어 버린 민식.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민식은 여러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친구들 앞에서 보약먹는것조차 쪽팔려하는 고등학생이다가도 예주를 위해서 몽둥이를 집어든다. 친구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나쁜 장난도 마다않던 민식이 예주에게 그들을 신경쓰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모습도 보이고. 진영이도 민식과 예주가 만나서 서로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봐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민식이라는 캐릭터가 정적인 영화 속에서 동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론 영제인 길 잃은 염소가 결국 예주에게 친구도 구원자도 되어주지 못하고 예주의 세상에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길을 잃어버린 민식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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